조혈모 세포(골수)기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며
골수기증에 대해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보네요.
일 년 반쯤 강서도서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고 있었을 때 골수기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강서양천신문에서 저를 취재하러 나온 적이 있었는데요. 신문사 기자님 덕분에 제가 신문에 나올 수 있었고
제 생각을 기사로 통해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기자님이 마지막 질문을 하셨었는데 그 질문이 "본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였거든요.
그 질문을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골수기증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자님이 그 대답에 꽤 인상 깊은 표정을 하셨는데, 나중에 기사를 확인해보니까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인지 제가 마지막에 했던 대답이 기사에서 생략되었습니다.
제 마지막 대답이 기사에 실리지 않아서 무척이나 아쉬웠었는데요. 그냥 그러려니 했고 시간이 일 년 반 이상 지나면서
제 기억 속에서 잊혀졌는데, 오늘 문득 제가 했던 대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걸 다시 잊어버리기는 조금 아까워 제가 했던 대답을 복기해 적어봤습니다.
마지막 하고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20170923) 그 질문의 대답을 복기해보며.
저희 대부분은 편파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골수기증이 굉장히 무섭고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론과 방송에서 골수기증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방송에 골수기증을 고통스럽게 표현하고, 골수기증이 기증자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고 표현해요.
그래서 대중들은 골수기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 쉽죠.
누군가에겐 고통스러울 수도, 불미스러운 사고로 기증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본 기증 절차는 수혜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아주 작은 통증이었어요.
방송에서 묘사하는 그런 위험한 수술도 아니었고 저에게 후유증을 남겨주지도 않았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중들이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언론과 방송에서 기증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골수기증이라는 것이 굉장히 두려울 수 있어요.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고 골수기증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더 두텁게 만들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나서서 골수기증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듯,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언론이 나서서 이를 바로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방송을 보는 시청자분들도 좀 더 열린 시각으로 골수기증에 대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또한, 정부기관, 기업들도 협력적이면 좋겠어요.
골수기증을 하고 싶은 기증자들도 현실적인 이유로 기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가게 셔터 내려놓고 가게 비울 수 없는 자영업자들도 있고요, 회사 눈치를 봐야 해서 기증을 포기하는 직원들도 많이 있거든요. 정말 안타까운 경우죠.
심지어 본인의 병가가 아닌 연차를 사용하면서 골수를 기증하는 이들도 있다고 해요.
사람의 생명은 값을 따질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 보는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며칠 동안 본인, 직원의 부재로 인해 매출 감소하는 것이 누군가를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로 인해 기증을 포기한 기증자는 얼마나 죄책감이 들겠어요.
밥벌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말이에요.
제가 착한 사마리아 법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법률적인 제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누군가를 살리는 행위에 대해서 정부의 보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구하려는 행위로 잠정적인 기증자가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도우려 하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이 당연한 것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드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저처럼 매우 일반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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