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중독, 커피.
이십 대 중반까지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추측건대 어릴 때부터 먹지 않았던 습관 때문일 것 같다.
어릴 적 커피를 드시는 어머니에게 "나도 한입 먹어보고 싶다"라고 말할 때마다 "이런 건 애들이 먹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주지 않으셨다.
나 역시 반항하여 굳이 찾아 먹지 않았고 커피는 아버지와 목욕탕을 갈 때 가끔 먹었던 달달하고 씁쓸한 음료였다.
2017년 교환학생을 이탈리아로 갔다.
많은 유적지, 관광지, 맛있는 음식, 좋은 날씨를 예상하고 떠난 교환학생이었고 정말로 그 기대에 부합한 곳이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것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기도 했고 커피도 그중 하나였다.
커피로 유명한 이탈리아답게 수많은 바(bar)들과 카페테리아(caffeteria) 그리고 커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스무 살 때 궁금해서 먹어봤던 쓰디쓴 에스프레소의 기억으로 별 관심이 없었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커피'의 디폴트값이 에스프레소이다. 한국의 디폴트값이 '아메리카노'인 것처럼).
하지만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유럽의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를 같이 가게 되었고 에스프레소에 대한 인식이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놀고 공부할 때 같이 마셨던 에스프레소가 습관이 되었고 현재까지 그 습관이 이어져 왔다.
매우 짧은 이탈리아에서의 몇 개월이지만, 점심 이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게 습관이 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한국에서는 이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에 모카포트를 하나 사 온 것이 지금까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습관의 시작이었다(정작 이탈리아에 있을 때는 모카포트를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밖에 나가면 1300원에 훌륭한 바리스타가 내려준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꼭 바에 가는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2인 브리카 모카포트로 시작했고 지금은 1인 모카포트를 애용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분쇄가루로 커피를 내렸지만 지금은 그라인더로 직접 갈아먹고 있다.
중독은 결핍의 표출이라고 한다. 가령 술, 담배, 마약과 같이 중독성이 강한 물질에 의존하는 것은 삶의 무언가 결핍이 있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독자는 본인이 중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스스로가 커피 중독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커피 중독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어쩌면 매일 아침이 아름다웠던 이탈리아를 나는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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